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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백크림 퇴출[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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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크고, 예쁘고, 대졸이지만 전업주부 선호하는 여성, 그리고 피부가 하얄 것.’

인도의 사업가가 신문에 며느릿감을 구하는 광고를 냈다. 하얀 얼굴을 조건으로 내건 이유는 이렇다. “인도에선 가무잡잡한 며느리를 얻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대거나 앞에서 대놓고 묻는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인도 사람들의 흰 피부 선호는 2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국 통치자들이 현지인을 채용할 때 피부색이 밝은 인도인을 선호한 이래로 흰 피부가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 된 것. 중매 사이트 분류 기준엔 교육수준, 소속 카스트와 함께 피부 톤이 포함된다. 2014년 인도계 미국인이 처음으로 미스 아메리카에 선발되자 “얼굴이 까무잡잡해 미스 인도는 못 됐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인간의 다양한 피부색은 진화의 산물로 보편적인 피부색은 검정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는 털이 없는 상태에서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다 보니 멜라닌을 다량 합성해 피부가 검었다. 동북아와 북유럽 등으로 퍼져 나간 사람들은 피부색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데, 고위도 지역에선 자외선 조사량이 적어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없으니 탈색 유전자가 작동한 것이다. 흰 피부는 일조량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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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피부색은 ‘권력’과 직결된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에선 백색 유럽 혈통이 상위층, 맨 아래가 피부색이 짙은 토착민, 그 사이에 혼혈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BTS 멤버들의 뽀얀 얼굴을 두고 일부 서양 누리꾼들은 “화이트워싱(whitewashing)하는 동양인들”이라고 비아냥댄다. 백인 흉내 내지 말라는 뜻으로 근저엔 백인 피부가 우월하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산업혁명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더라면 미의 기준이 달라졌을까.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시작된 인종차별(racism) 철폐 운동이 검은 피부 차별(colorism) 반대로 이어지면서 미백 화장품도 청산 대상에 올랐다.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인 프랑스의 로레알은 앞으로 제품 이름과 설명에서 ‘미백(whitening)’이라는 표현을 빼기로 했다. 유럽의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도 미백크림 ‘페어 앤드 러블리(fair and lovely·밝고 사랑스러운)’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피부색에 따라 사는 형편이 달라지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피부색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정치적 각성만으로 미백시장을 수십조 달러 규모로 키운 흰 피부에 대한 오랜 욕망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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