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는 근대 이전에 정착 세력과 유목 세력의 대결장이었다. 이후 유목 세력이 약해지자 정착 세력은 해양·대륙 양대 세력으로 분화했다. 크림전쟁에선 해양 세력인 영국·미국·프랑스 등과 대륙 세력인 러시아가 맞붙었다. 두 세력이 동북아에서 벌인 싸움은 러일전쟁이었다. 크림반도와 러시아의 곡창·유전 지대였던 캅카스 일대는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이 모스크바 대신 승부수를 띄운 곳이었다. 크림반도는 기원 전에는 스키타이·그리스·로마 등이 차례로 지배했다. 기원 3세기 이후부터는 고트·아바르 등 유목 민족이 각축을 벌이다가 13~15세기에 몽골계의 킵차크한국이, 16~18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차지했다. 그 뒤에는 러시아 세력권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종반에 미국과 영국·소련의 수뇌부가 모인 얄타회담의 개최지 얄타도 크림반도 남부의 항구도시다. 크림은 ‘요새’라는 뜻이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영토 갈등이 우크라이나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 디자인 논란으로 번졌다. 우크라이나 대표팀이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니폼 상의 앞면에 크림반도가 포함된 자국 지도를 새기자 러시아가 유럽축구연맹에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항의 서한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대표팀은 러시아가 2014년 3월 무력으로 빼앗아간 크림반도를 되찾고자 하는 염원을 표현했을 것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동북아의 크림반도’라고 할 수 있다. 크림반도의 역사로부터 힘이 약하면 언제든 강대국에 휘둘릴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주변국의 공격에 대응해 즉각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고슴도치 전략’을 펴야 국가 안보와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ttps://ift.tt/3pzqUjL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만파식적] 크림반도 - 서울경제 - 서울경제신문"
Post a Comment